*글 : KBS 한국인의 밥상 참조.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출처.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19년 독립만세가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변화한 밥상이야기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던 그 시절 밀가루, 인공조미료, 맥주가 들어온 시절이였습니다.
*서울토박이중앙회 부회장, ‘오순자’님
왜간장은 솥에 밥을 한 다음에 뜨거운 밥을 바로 퍼서 다른 거 안넣고 왜간장만 넣고 계란을 풉니다. 밥이 뜨거워서 자연히 계란이 익으면 비벼서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탕이 상당히 귀해서 아무 집이나 가면 설탕이 있는게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여름에 손님이 오면 대접에 시원한 물을 떠서 설탕 한 숟가락을 넣고 휘휘 저어서 대접하면 최고였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는 근대시기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음식의 경우에도 일본 전통의 음식도 있었지만 일본이 받아들인 서구의 음식들이 일본화 되어서 일본 음식과 접목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군산시 ‘ㅇ’ 제과
여기서 제일 유명한 빵은 단팥빵, 고구마빵, 채소빵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여기가 일제강점기 때 생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긴 빵집입니다.
‘단팥빵’은 일본에서 1874년 만들어 졌습니다. 1920년 대 일본인이 운영하다가 전쟁 후에는 한국인들에게 기술을 알려줬고 그 후에는 한국사람이 운영했다고 합니다.
호남에서 올라온 곡식이 일본항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모였던 군산항은 일본인들로 넘쳐났고 군산에 살던 조선인들은 산으로 쫒겨났습니다. 바닷가 근처 일본인 거주지에는 과자점과 빵집이 넘쳐났고 60~70년 대에 지금의 카페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제과와 제빵이 서구식이라고만 생각하고 일본화 된 빵과 과자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소비를 해왔던 것입니다.
*일본 도쿄
우리 나라에 많은 떡이 있는데 유독 찹쌀떡만 제과점에서 파는 것일까요? 이 이유를 일본에서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는 200여 종의 떡이 있지만 일본의 떡종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찹쌀떡을 변형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찹쌀떡은 일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축하할 때도 먹고, 아기가 태어났을 때나 아기 100일 때 큰 찹쌀떡을 먹습니다. 붉은 찹쌀떡과 하얀 찹쌀떡을 먹습니다.
구운 찹쌀떡을 간장에 찍어 김에 싸먹습니다.
이 찹쌀떡을 정초에 항상 먹는데 파는 곳이 떡집뿐만 아니라 화과자점이나 빵집에서 팔았습니다. 그래서 전쟁 후 우리나라 제과점을 연 일본인들이 판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정월에 찹쌀떡을 먹으면 건강을 빕니다.
대부분 일본에서 간장은 어떤 요리에도 들어가며 간을 할 때에 조미료 대신 반드시 간장이 들어갑니다. 진한맛을 내는 간장, 연한 맛을 내는 간장 등 거의 공장에서 만드는 것을 씁니다.
일본에서도 집집마다 담그는 재래식 간장이 있었으나 서구의 문물을 받아드려 모든 생활을 근대화 하면서 집에서 간장을 담그는 것을 금지하고 공장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곰팡이를 배양해서 만든 간장입니다.
이런 간장이 들어온 것도 강점기 때 들어와서 서울에 100여 곳의 간장공장이 들어오고 이때부터 왜간장이라는 것이 생기고 더불어 조선간장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간장공장을 다시 가동시킨 것은 한국전쟁 때 입니다. 군인들 먹일 간장이 많이 필요했고 다시 60~70년대 상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간장공장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아직도 시골에서는 정월이면 겨울 내 말린 메주로 간장을 만듭니다. 곰팡이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검은색,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이렇게 있는데 주로 하얀색이 많이 피어야 맛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염으로 소금물을 만들고 계란으로 염도를 잽니다. 소금간은 날씨에 따라 소금 간을 달리해야합니다. 종갓집은 제사 때나 명절 때 쓰는 간장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씨간장이라 하는 대대로 내려온 간장입니다.
시간에 따라 씨간장 진장 중간장 청장 이렇게 부릅니다. 간장에 따라 요리에 쓰임새도 다릅니다.
전복초는 5년이상 숙성시킨 진장을 씁니다. 불고기, 갈비, 잡채에 왜간장을 안쓰고 진간장에 집에서 만든 조청을 넣어 단맛을 살립니다. 오래된 간장은 풍미를 만들어 냅니다.
청국장을 끊일 때 중간장을 씁니다. 청국장의 맛을 죽이지 않기 위해 가벼운 간장을 쓰는 겁니다.
맑은 송이버섯 묵국에 청장을 씁니다. 오이냉국이나 맑은 것을 할 때는 씁니다. 아니면 맛이 순한 가벼운 무침 요리에 쓰입니다. 죽숙무침도 그 중 하나 입니다.
‘아지노모도’는 조미료의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서 파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이상한 것을 먹인다 뱀가루다라는 소문이 있었고 신문 광고를 실어도 안 팔렸습니다. 그러나 아지노모도는 비싼 고기로 육수를 만들어야하는 냉면집을 공약했고 성공했습니다.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 맛에 길드려졌습니다.
아지노모도는 없어졌지만 인공조미료들이 생겼고 세계에서 인공 조미료를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
일본에서 처음으로 명란젓을 판 가게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명란젓을 좋아해서 명절 선물로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일본에 없던 음식 입니다. 지금의 명란젓은 조선의 명란젓에서 온 것입니다.
어머님이 일본 명란젓이 짜기만 해서 예전에 먹었던 매콤한 명란젓에 비해 너무 맛이 없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걸 듣고 그럼 맵게 만들어보자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먹기 위해 한국에서 먹던 맛을 기억해가며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드셨던 맛을 일본인 입맛에 맞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하여 한국의 맛을 일본에 퍼뜨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매년 3~4월이면 북해도 지역에서는 명태 잡이가 한창입니다. 수온 상승으로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가 후쿠오카에서 많이 잡힙니다. 명태에서 제일 짭짤한 수입을 내는 음식은 명태 알입니다.
일본의 명란젓 음식이 다양합니다. 명란젓 스파게티, 명란젓 계란 말이 등이 있습니다.
명란젓 외에도 조선음식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조선만화(우스다 잔운 저)에 보면 ‘조선요리 중에서 첫 번째 명물로서 우리나라 사람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것은 신선로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냄비가 맛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는 국물이 맛있다. 이것은 쇠머리를 끓이고 끓여 만들어내 국물이다.’라고 나옵니다.
‘신선로’는 누구의 생신이라든가 또는 결혼해서 잔치를 한다든가, 큰 상을 차릴 때 신선로가 상 한 가운데 있어야 제대로 구색을 갖춘 잔칫상이라고 합니다. 신선로는 만든다고 안하고 꾸민다고 합니다. 신선로는 무와 양지머리 고기로 육수를 내서 생선살, 간, 천엽을 부치고 육수를 낸 무, 양지머리를 자르고 다시 양념을 해서 맨 밑에 깔고 양념한 육회를 깔고 전들을 올립니다. 그리고 각종 견과류를 놓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야채도 넣습니다. 국물이 우려나는 것이 밑으로 위로 갈수록 화려해집니다. 신선로는 음식이름이 아니라 그릇 이름입니다. 가운데 숯을 놓아 야외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설날 떡국도 못 먹었습니다. 떡메 소리가 나면 순사들이와서 잡아 갔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반죽해서 조물조물 굴린 다음 떡을 썰어서 ‘생떡국’을 해먹었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설에 오는데 고기육수에 떡이 모잘라서 밥을 넣어 끊여 양을 느렸는데 그것이 ‘원밥수기’라고 합니다.
쌀을 일본인들이 다 수탈을 해서 항상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대용으로 나온 것이 ‘밥당숙’입니다. 밥에 물을 말아서 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수탈해간 것은 쌀만이 아니였습니다. 1910년도에 일본 사람이 쓴 조선의 산우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우는 영리하고 사람 말을 잘 듣고 온순한 성격일 뿐만 아니라 환경 적응력이 좋아 사료비도 적게 들고 또한 살도 잘 붙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해서 일본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많은 한우를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면서 가죽이 많이 필요했고 조선피혁주식회사를 통해서 소가죽을 많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국 어디를 가나 항상 일제 강점기에 수탈 흔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건멸치입니다. 멸치가 예전에 밥상에 많이 오르던 것이 아니였습니다. 쪄서 말렸던 건멸치가 조선에는 없었습니다. 이것도 일본인들이 항상 육수를 낼 때 쓰는 중요한 재료라서 그 기술을 정착시켰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밥상에 정착한 것입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러시아와 전쟁을 할 때 유리한 위치에 있던 진해구는 일본인들이 정착하면서 거주민들은 다 산으로 쫒겨 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 비상식으로 나물 무치고 메밀가루에 쑥을 무쳐서 먹고 살았답니다.
그 때 주식이 깻묵이였다고 합니다. ‘깻묵밥’은 하루동안 불렸던 깻묵을 잡곡밥에 넣어서 양을 불려 먹었다고 합니다. 배급을 해줬었지만 그것도 가족이 많아야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봄이되면 나물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쑥과 비쌌던 소금은 쬐금 넣고 메밀가루를 무쳐서 쪄서 먹었습니다. ‘쑥버무리’입니다.
냉이로 반찬을 해먹었다고 합니다. 냉이를 삶아서 된장, 다진파, 참기름, 조미료 등을 넣고무쳐냅니다.
지금은 건강밥상이지만 그 때는 없어서 그렇게 먹었다고 합니다.
*일본
일본 음식은 일본 음식보다 외국 음식이 많고 한국음식이 많이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막걸리, 삼겹살, 김치 등이 일본인들의 외식문화가 되고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한국인의 밥상과 입맛이 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결국 한국인이 주체가 돼서 서양의 것이건 일본의 것이건 우리 입맛에 맞도록 바꾸는데 한국인의 손맛이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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